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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공식 포스터

재난 영화 속 선택은 과연 우리와 무관할까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엔 친구들과의 그 여행 사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는 극한 상황의 이야기라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제 경험상 우리도 이미 작은 재난 속에서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궁 아파트라는 폐쇄 공동체의 탄생

지진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고 유일하게 멀쩡한 황궁 아파트만 남았을 때, 그곳엔 두 부류의 사람이 생겼습니다. 원래부터 살던 주민들과 살 곳을 잃고 들어온 외부인들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상황에선 서로 돕는 게 당연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영화 속 주민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외부인부터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폐쇄 공동체(Closed Community)'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폐쇄 공동체란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내부 구성원만의 규칙으로 유지되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황궁 아파트가 딱 그랬습니다. 155호 화재를 진압한 영탁이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주민들은 그를 임시 주민 대표로 선출했고, 곧바로 '데스 투표'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외부인을 퇴출시켰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결혼한 친구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저희는 난처했습니다. 오랜만에 우리끼리 가기로 했던 약속이 흔들렸고, 누군가는 선을 그어야 했습니다. 제가 차분히 설명했지만 친구는 울면서 나가버렸죠. 그 순간 저는 황궁 아파트 주민들처럼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선택을 했던 겁니다.

영탁은 민성을 방범대 반장으로 임명하며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습니다. '오직 주민만이' 아파트에 머물 수 있다는 원칙 아래 배급 시스템과 역할 분담이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식량 조달 원정은 번번이 실패했고, 곰팡이 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외부 세계가 얼마나 잔혹한지 소문이 퍼질수록 주민들의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은 커졌습니다.

영탁의 정체와 붕괴하는 신뢰 구조

명화는 809호 남자가 외부인들을 몰래 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파트 내부의 균열을 감지했습니다. 민성도 식량 원정 중 외부인과의 충돌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 점차 영탁의 방식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리더는 투명해야 신뢰를 얻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극한 상황에선 카리스마가 투명성을 이긴다는 걸 영화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903호 여학생이 외부에서 살아 돌아와 영탁이 진짜 902호 주민이 아니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명화는 결정적 증거를 발견합니다. 영탁은 부동산 사기 피해자였고, 황궁 아파트 주민이 아니었던 겁니다. 여기서 '정체성 사기(Identity Fraud)'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정체성 사기란 자신의 실제 신분을 숨기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여 집단 내 지위를 얻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영탁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의 정체가 폭로되자 모든 원망은 영탁에게 향했습니다. 민성은 형처럼 따르던 영탁에게 총구를 겨누게 됐고, 아파트 내부의 신뢰 구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저도 친구 사건 이후 며칠간 고민했습니다. 결국 친구들과 다시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가 엄마가 된 친구의 모성애를 헤아리지 못했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서로 배려하기로 하고 다 같이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선을 그었는데, 결국 그 선을 다시 지운 건 저희 모두였습니다. 영화 속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끝까지 그 선을 지우지 못했고, 그게 파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최후의 선택과 인간 본성의 양면성

박 소장의 배신으로 아파트 방벽이 무너지고 외부인들의 약탈이 시작됐습니다. 영탁은 자신이 모든 걸 바친 아파트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민성은 명화를 지키려다 사망했고, 명화는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 결말에서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됩니다. 생존자 편향이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의미합니다. 명화가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녀의 선택이 옳았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민성의 희생, 영탁의 집착, 809호의 은밀한 선행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제가 직접 경험한 여행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선택이 옳았는지, 친구의 요구가 무리였는지 명확히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게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선택의 스펙트럼을 다룹니다. 민성의 무릎 꿇음, 명화의 답답한 선행,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이기심은 모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 관객들은 재난 영화를 볼 때 자신을 대입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있습니다.

이병헌의 열연은 영탁이라는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그는 가짜 주민이었지만 아파트를 지키려는 진심만큼은 진짜였습니다. 제 생각엔 영탁이 악인이 아니라 극한 상황이 만든 피해자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가 부동산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진짜 주민이었다면 영웅으로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그 자격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의 틀을 빌려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탐구합니다. 황궁 아파트는 결국 콘크리트만 남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선택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친구들과의 그 사건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우리도 작은 황궁 아파트를 만들 뻔했고, 누군가를 밖으로 밀어낼 뻔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다시 문을 열었지만, 영화 속 주민들은 끝까지 문을 닫았습니다. 그 차이가 생존과 파멸을 갈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는 액션과 스펙터클로 승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인간 드라마로 더 강렬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들을 진지하게 보여주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건,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